[한달 자기발견] Day+13 강박적으로 집착하는, 떠올리는, 열성적으로 파고드는 대상이 있나요? (13/30)

2021. 2. 13. 23:13나의 기록들/한달 자기발견

Day+13 강박적으로 집착하는, 떠올리는, 열성적으로 파고드는 대상이 있나요?

 나는 아주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. 뭔가를 시작해서 끝내는 데까지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. 집에서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원래 플레이타임보다 오래 걸리고, 만화책을 보더라도 한 권을 보는데 남들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.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, 자막 하나까지 다 듣고 넘어가야 하고, 배우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다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. 만화책에서도 '쿠구궁', '휘리릭(?)' 같은 그다지 의미 없는 효과음까지 다 읽고 캐릭터의 표정과 배경 등 작가가 그려놓은 모든 부분을 다 보고 넘어가야 한다. 영화의 감독이나 연출자, 만화책의 작가들에게는 굉장히 고마운 관객이자 독자인 셈이다.

 내가 이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지했던 건 초등학생 때부터였다. 친구들끼리 책방에서 만화책을 빌려서 같이 보는데 내가 너무 느리다 보니까 내 뒷 순서의 친구는 항상 내가 다보기를 기다려야만 했다. 친구들에게 너네는 왜 이렇게 빨리 보냐고 물어보니까 줄거리만 파악이 될 정도로 보고 넘긴다고 했다. 오히려 모든 요소를 파악하고 넘어가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. 이후로 중고등학교, 대학을 넘어 지금까지 집에서 영화를 다운로드하여보거나 넷플릭스를 볼 때도 놓친 장면은 모두 다 되감아보고 있다.

 문제는 내가 해야 하는 과제나 일에서도 이 같은 강박이 이어진다는 것이다. 같은 시간 안에 99점짜리 1개를 끝내는 것보다 80점짜리 2개를 끝내는 게 효율면에서 훨씬 좋다는 걸 알면서도 성격상 그게 잘 안된다. 남들이 봤을 땐 80점 짜리나 99점 짜리나 그게 그건데 내 만족을 위해서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버리는 것이다.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적당한 수준으로 많은 일을 처리해보는 것이, 나무 말고 숲을 보는 것이 나의 성장에 더 좋은 영향을 줄텐데 말이다.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주 번아웃을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.
 하지만 나 같은 성향도 필요한 순간이 있다.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을 때 그 이상을 뚫고 나가는 건 결국 나 같은 집착맨들이다. 어떤 분야에서 1%에 든다는 것은 그런 사소한 부분들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.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내 위치를 잘 파악하는 것 같다. 나는 지금 사소한 부분들까지 챙길 때는 아니라 생각한다. 효율적으로 시간 대비 많은 양을 처리해 경험과 노하우를 쌓고, 이후 변화가 필요하거나 정체가 되었을 때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. 걸음마 단계부터 완벽히 보여주려는 강박을 버리고,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완성도와 스트레스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가는 지혜를 가져야겠다.